좌익인 아버지로 인해 6.25가 끝난 후 가난에 시달려 집을 나와 부산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 우연히 영화계에서 밑바닥 일부터 시작하여, 드디어 25세인 62년 액션물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데뷔했다. 이후 먹고 살기 위한, 흥행을 목적으로 한 50여 편의 영화를 만들다가 80년대 들어서 서서히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영화광 세대가 아닌 직업으로서 영화를 만든 사람으로, 수 십년의 경륜에서 울어나는 뛰어난 한국적인 시각과 인생의 안목을 깊이 보는 것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81년 <만다라>가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한 데 이어 86년 <길소뜸>으로 또한번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86년 <씨받이>로 국내 처음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강수연)을 수상, 이듬해 몬트리올에서 <아다다>로 다시 여우주연상(신혜수)을 수상했다.
<증언>으로 13회 대종상(특별상 감독), <족보>로 17회 대종상, <만다라>로 20회 대종상, <왕십리>로 12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낙동강은 흐르는가>로 13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안개 마을>로 19회 한국연극영화예술상, 국내 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 <장군의 아들>을 거치면서 92번째 작품인 <서편제>로 상해 영화제 감독상 수상하면서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거장이 되었다.
소도구 조수, 조명 조수를 거치며 충무로의 전통적 도제 시스템을 통해 경험을 쌓았던 그는, <노는 계집 창>까지 9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51번째 영화인 73년작 <잡초>부터 작가 의식을 담기 시작했다는 자평. 동양적 여백의 미가 가득한 영상과 인본주의적 지향의 작품을 만들어왔다
<춘향뎐>으로 칸느 영화제 본선에 진출했으며, <취화선>으로 마침내 칸느 감독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경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7년간 10여편의 연극 연출 및 배우로 활동했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12년간 주목받는 소설가로 손꼽혔던 그는 1993년 영화계에 입문했다. 박광수 감독의 조감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참여하고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를 쓴 뒤 문성근, 명계남, 여균동 등의 도움으로 자작시나리오 <초록물고기>로 데뷔했다. 벤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 <초록물고기>는 1997년에 제작된 가장 뛰어난 한국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데, 박광수 영화로부터 이어진 리얼리즘 정신과 장르적 완성도가 적절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그의 두번째 영화 <박하 사탕>은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 작품으로 첫 소개되었다. 한사람이, 그의 관계가, 그리고 그를 둘러싼 주변과 시대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첫사랑을 중심으로 보여진다.
출생 : 1960년 12월 20일
성별 : 남
출생지 : 한국 경상북도 봉화
공식 홈페이지 : http://www.kimkiduk.com/
일산의 농업전수학교를 거쳐 총회 신학교 졸업. 해병대 하사관으로 5년간 복무, 1990-92년, 유럽에서 회화(반구상)을 수학했다. 귀국하여 1993년 <화가와 사형수> 시나리오가 작가협회 창작상 대상을 수상하면서 시나리오 작가 활동을 시작하여 1994년 <무단횡단>이 영화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 대상을 수상했다. 1995년 초저예산 영화 <악어>를 통해 감독에 데뷔하여 평단에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저예산의 비주류 영화들을 일관되게 연출하는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표현하기 힘든 인물들과 충격적인 영상, 파격적인 메시지로 평단과 관객의 호응과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서강대 철학과 졸업. 김용태와 함께 서강 커뮤니케이션 출신이다. 예술영화, 작가영화로 출발해 장르영화, B급영화, 컬트영화 등 다양한 장르영화에 애정을 표현해 왔다. 92년 <달은 해가 꾸는 꿈>이 데뷔작이며 <공동경비구역 JSA>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최신작 <복수는 나의 것>을 통해 한국 최초의 정통 하드보일드 영화를 선보였다.
데뷔 : 1988년 영화 조감독 <깜동>
주요수상 : 2003 청룡영화제 감독상 (올드보이)
1988년 제 2회 동경 국제영화제 이장호감독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국제비평가협회상
이장호
출생 : 1945년 01월 16일
성별 : 남
출생지 : 한국 서울
1950년 서울 금화국민학교 입학,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 부산국민학교 1학년에 입학했다. 1952년 덕수국민학교 1학년으로 재입학, 1964년 서울중.고등학교 졸업. 1966 홍익대학교 건축미술학교 중퇴. 1972년 박규애와 결혼.
1965년 신필름에 입사, 영화 연출을 수련했고, 1971년 '민족극단'에 입단.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감독 데뷔했다. 1975년 하길종, 변인식, 김호선 등과 함께 '영상시대'를 조직하여 신영화 운동을 전개. 1976~79 대마초 흡연 혐의로 문공부에 의해 감독직 박탈당하기도 했다. 1980년 <바람불어 좋은 날>로 재기했으며, 1984년 독립 제작사'이장호 워크샵' 설립했, 1986년 '판영화사'를 설립했다.
1990년 제12회 낭뜨 3대륙영화제 박광수감독
'그들도 우리처럼' 심사위원특별상, 최우수여우주연상(심혜진)
박광수
출생 : 1955년
성별 : 남
출생지 : 한국 강원도 속초
서울대 미대 조소과 재학 중에 영화서클에 가입하면서 영화와 인연을 맺은 그는 <칠수와 만수>로 데뷔했다. 이후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등은 해외영화제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근래 <그 섬에 가고 싶다>와 <이재수의 난>등의 역사극을 연출했으며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영화 활동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프랑스 파리 영화교육 특수학교 (ESEC) 졸업
이장호 감독 조감독 ( <공포의 외인구단>,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 부위원장
본명은 장만철. 서울대 고고 인류학과 졸업. 대학 재학시절부터 약 10년간 마당극 등 민중문화 운동에 앞장섰다. 그후 그후 민중문화운동의 리더 격이었던 황석영의 소개로 이장호 감독을 만나,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80)을 보고 영화에 뜻을 두게 되었다.
80년 5공화국의 시작과 함께 당국의 주목을 받자, '선우'로 필명을 정해 영화평론을 계속 발표했다.(선우는 선우완 감독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함) 창작 시나리오와 MBC-TV의 베스트셀러 극장의 대본을 몇 편 쓴 후 86년 선우완 감독과 공동연출로 <서울예수>를 만들면서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기성 상업영화 자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찍은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라고 할 수도 있는데, 검열과 여러 가지 사안 때문에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88년에는 야망으로 가득찬 한 신입사원을 통해 현대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한 <성공시대>를 만들어 작품성에서나 흥행성에서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91년에 하일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경마장 가는 길>, 92년 고은 원작의 <화엄경>을 만들었다. 99년 뜨거운 논란을 일으킨 <거짓말>은 99 베니스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했다.
2002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충무로에 "재앙"을 몰고 왔다.
출생 : 1948년
성별 : 남
출생지 : 한국 경상북도 청도
공식 홈페이지 : http://www.parkchulsoo.co.kr/
1948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나, 경북 중, 대구 상업 고교를 졸업하고, 장리쌀 매고 상경했다. 1973년 성균관 대학교 경상대학 졸업한 후 학교 교직, 재벌업체 근무를 그만 두고 1976년 영화에 입문했다. 1979년 영화감독에 데뷔, 1980년에는 MBC TV에 입사하여 드라마 PD 생활을 하다, 1988년 방송국을 그만두고 영화에 복귀했다. 이후 많은 영화를 감독하면서 1994년에 독립영화사 박철수 필름을 설립했다.
출생 : 1961년
1980년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 1985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 졸업, 시카고 예술학교 예술학 석사, 1997 한국예술종합대학교영상원 영화과 교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벤쿠버 국제 영화제에서 용호상,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타이거상 수상
<강원도의 힘>이 제50회 깐느 영화제공식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특별 언급상' 수상.
2000년 <오! 수정>으로 깐느 영화제 진출.
2002년 제22회 판타스포르토 국제영화제 윤종찬감독
'소름'감독상(윤종찬), 여우주연상(장진영), 심사위원특별상
윤종찬
출생 : 1963년
82년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87년 다시 한양대 연극영화과로 옮겼다. 91년 졸업 뒤 하명중 영화사에서 충무로 생활을 시작하여 외화 수입, 번역 등 기획실장 일을 하다 92년 김영빈 감독의 <비상구가 없다> 조감독을 하면서 본격적인 감독 수업을 시작했다. 조감독 한편을 마친 뒤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출국하기 며칠 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났다. 그는 이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윤종찬 감독은 미국 시라큐스 영화과 대학원 재학 시절하면서, <플레이백>, <메멘토>, <풍경> 등 기억과 운명에 관한 단편 3편을 만들었다. 98년 졸업 후, 국내로 돌아온 그는 99년 <수호戰>이라는 데뷔 준비를 했어나 여건상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다. 2001년 호서대학교 연극영화과 영화학부 교수 겸임.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영화를 접하게 된 장준환 감독은 졸업 후 한국영화아카데미 11기로 입학해 본격적인 영화수업을 받았다. 졸업작품인 <2001 이매진>으로 클레르몽-페랑영화제, 샌프란시스코영화제, 밴쿠버영화제 등에서 호평을 받으며 관심을 모았다. 이밖에도 류승완 감독의 단편 <변질헤드>와 봉준호 감독의 단편 <지리멸렬>에서 각각 촬영과 조명을 담당한 바 있다. <모텔 선인장> 연출부로, <유령>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면서 충무로 경력을 쌓은 그는 직접 쓴 시나리오로 2003년 <지구를 지켜라>를 연출하며 장편극영화에 감독 데뷔했다.
62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89년 한국영화 아카데미 5기로 졸업, <구로 아리랑>, <장군의 아들 1, 2>, <개벽>, <김의 전쟁> 등에서 연출부에서 일했고 <처녀들의 저녁 식사>로 정식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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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후쿠오카 국제영화제 김현석감독
'YMCA 야구단'최우수 작품상
김현석
출생 : 1972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제작석사(MFA) 과정 중.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시 처음으로 쓴 시나리오 <사랑하기 좋은 날>이 영화화되면서 시작된 영화 작업은 이후 군복무 중 작업한 <대행업>이 1995년 대종상 신인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세번째 시나리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을 영화화하며 명필름과 인연을 맺은 김현석 감독은 이후 <섬>의 조감독, <공동경비구역 JSA>의 각색으로 명필름 작품에 참여했다. 시나리오를 2년여에 걸쳐 작업했다. 으로 감독 데뷔.
한국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억지스런 편견을 깨부셨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 대한 고찰까지 담은 <로드무비>를 통해 '2002년 최고의 발견'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으며, 그 해의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다. 흑백화면에 거친 질감의 영상,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로 연출력을 인정 받은 김인식 감독은 그의 두번째 영화 <얼굴없는 미녀>를 통해 또 한번 한국영화의 현재를 조명할 만한 웰 메이드(well made) 영화 한편을 선보였다.